하나 됨
요한복음의 주제는 "하나"입니다.
주님과 아버지가 하나 됨 같이 우리와 주님, 그리고 아버지가 하나되는 것이 성경의 목표요 핵심입니다.
그런데 하나 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우리는 먼저 물질의 하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술먹는 사람들은 칵테일을 좋아합니다. 잘아시는대로 이 술과 저술을 혼합해 만든 새로운 술입니다.
처음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술이었지만 혼합된 후로는 이 술도 저 술도 아닌 전혀 다른 새 술이 된 것입니다.
또한 내용의 하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그 사상이나 내용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은 심판에 대하여, 신약은 사랑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구약과 신약은 전혀 다른 책이 아닙니다. 구약은 주로 육적 대상을 향해 하신 말씀이고,
신약은 주로 택한 백성을 중심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전혀 다른 책으로 볼 수 있으나 한권의 책입니다.
숫자도 그렇습니다. 1과 2가 합쳐지면 3입니다. 3이 되면 1도 2도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3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가 있고 너가 있으면 각각 하나씩입니다.
그러나 너와 내가 합치면 그땐 우리 입니다. 각각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생각도 그렇습니다.
제각각의 생각이 하나로 통일 되면 하나입니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자기를 포기하고 전혀 다른 하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물질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둘 셋이 하나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스’ (헬라어의 전치사)입니다.
수학의 ‘+’ 가, 바로 헬라어 프로스(pros)입니다.
그런데 프로스를 통해서 하나가 되려면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려면 내가 무엇과 하나가 될것인가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여기 커피가 한잔 있고 홍차가 한잔 있다면 이 둘을 서로 합쳐서 칵테일 차를 만들어 먹어도 될 것인가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합치기는 한잔으로 합쳐야 하는데 커피와 홍차를 하나로 합쳐도 될것인가, 말것인가를 오락가락 하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락가락합니다. 세상도 좋습니다. 완전히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도 쓸만 합니다. 그쪽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월-토는 세상과, 주일은 하나님과 미팅하면서
적당히 양쪽의 관계성을 유지해 갑니다.
그것이 선데이 크리스챤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오로지 세상과 돈 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세상과 일체가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의 신앙생활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주님도 주님 나름대로 신앙생활의 기준이 있습니다.
곧 '프로스' 신앙생활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프로스 신앙생활을 하셨으며, 그래서 어떤 분이 되셨으며, 우리 또한 어떻게 하셨는가를 살펴봄으로
이제부터라도 프로스 신앙생활을 통해 주님의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프로스 톤 데온(하나님과 함께)' 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일반적으로 ‘프로스’ 전치사가 ‘에이미’(영어로 be 동사) 동사와 만나면 그 뜻이 "함께"로 표현됩니다.
막 14:49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이런 말씀들이 다 프로스 전치사와 에이미 동사가 만나 만들어진 문장들입니다.
그렇다면 ‘호 로고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을 목적하고 그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한
존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곧 호 로고스의 신앙생활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만을 향하고 바라보며 배우고 받습니다. 비록 로고스 말씀이라도 과정상에서 프로스 톤 데온’(하나님과 함께, 원문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을 하시므로 그 결과 그도 ‘데오스’(하나님)가 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다 내게로 오느니라"하신 것입니다.
이 대목을 요한일서 1장 2절에서는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되니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전치사에 ‘함께’라는 의미를 가진 전치사는 '메타(meta)'가 있고 '하마(hama)'도 있으며 또 '순(sun)'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꼭 프로스 전치사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전치사들이 수평적인 의미로 쓰이는 반면 프로스는 ‘상향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목적적 뉘앙스가 강하게 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한문 문자 그대로 신앙(信仰), 즉 믿을 신, 우러를 앙, 위를 향하여 믿는 것을 말합니다.
곧 프로스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서 호 로고스도 데오스가 되었다면 누구나 호 로고스를 받은 자가 ‘프로스 톤 데온’을 하면 하나님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35절에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들이라 하였거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호 로고스(말씀)’가 ‘프로스 톤 데온’(하나님과 함께)하므로 하나님이 됩니다.
즉 말씀이 하나님을 배우면 하나님이 됩니다. 이를 "말씀 하나님"이라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을 배워 하나님이 되므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말씀에서 나온 만물은 그의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며 그로 말미암지 않는 만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 돌아감이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그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꽃들은 그를 향하여 향기를 발하고 있고, 모든 새들은 그를 노래하며, 모든 나무는 그를 향하여 뻗어 자랍니다.
2.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아무나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스 톤 데온을 하려면 아버지께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프로스 톤 데온’을 할수 있으며, 그러므로 신들이 됩니다. 그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분을 통해야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통하는 것도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요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래서 그분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꼭 그분을 통해서만이 아버지께로 가야 하는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들의 하나님 이십니다.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죽은자로서는 산자들의 하나님이신 그분께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자가 되어야 갈수 있는데 산자가 되려면
반드시 그분을 통해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그래서 당신 자신을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분은 고로 門(문)이며 길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거룩한 길이고 구속함을 얻은 자들만 위하여 있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35:7-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3.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는 주님을 통해서만 살수 있고 산자가 되어야 만 아버지께 갈 수 있는데 우리는 그분에게 가는 방법을 모릅니다.
어떻게 그분을 찾고 그분에게 가야할 길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53장의 말씀대로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스 톤 데온’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호 로고스’(말씀)로 ‘프로스 톤 데온’(하나님과 함께) 하시던 그분이 이제는 그 프로스 방향을 우리에게로 바꾸셨습니다.
우리 또한 당신처럼 ‘프로스 톤 데온’ 하게 하시므로 우리도 당신처럼 ‘데오이’(신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종(主從)관계가 아닌 형제 관계로, 스승 제자 관계가 아닌 권속관계를 회복하려 하심입니다.
사 24:2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와 가모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
4.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인생이 어디를 향해서 갑니까?
무엇 때문에, 왜...?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자기를 떠나가자 남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 대답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는데 우리가 뉘게로 간단 말입니까"
영생의 말씀이 계시면 바로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가야할 곳이란 바로 영생의 말씀이 계신 그곳 뿐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이 영생의 말씀이 있는 생명나무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로 나아갔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노아시대 사람들 역시 영생의 말씀을 외면하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 짓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홍수에
멸망하였습니다.
가야할 곳으로 가야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너무 간단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자는 떡으로만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설교를 듣는 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다릅니다.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을 좆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때에야 드디어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말씀적 기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기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레마 말씀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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