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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양식/강해설교

마가복음 강해3 [1장12-13절: 성령이 예수를 몰아내다]

마가복음 강해3 [1장12-13절: 성령이 예수를 몰아내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2)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1.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다.

바로 전 장면이 예수님이 물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하늘들이 찢겨지고 진짜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고 음성이 나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확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십니다.

 

몰아내신지라라는 말의 원어는 엑크발로입니다. 이 단어는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하는, 축사 용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날지어다”라고 할 때, 그 단어가 이 엑크발로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마치 귀신처럼 쫓아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을 이렇게 내쫓을 수가 있습니까?

 

사실 예수님이 광야로 내쫓기시는 사건이나, 하늘의 하나님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이나 하나님의

자기 비하를 잘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똑같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똑같이 먹고, 똑같이 시험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버리심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에서 보여집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막 15:34)

 

우리는 십자가에서 무기력한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를 압제하는 로마를 쳐부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이러한 절규앞에 십자가 밑에 있던 자들은 조롱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보라!

 

광야에서 사탄이 시험한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이 떡이 되게 하라!

기적을 보여주시면 내가 믿겠습니다.

내게 성공을 가져다 주면 믿겠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내 뜻을 이루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입니다.

성령은 내 소원을 성취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도 보장되고 덤으로 이 땅에서도 성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취월장, 만사형통, 인생의 대로가 열릴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원성취, 문제해결을 하는 전지전능한 힘있는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원하지,

이렇게 쫓겨나는 하나님을 절대 상상하지 못합니다.

예수, 부처, 마호메트라는 이름만 다를 뿐 “나를 위한 더 큰 힘”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신이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신이고, 하나님은 급할 때 문지르면 나오는 “지니”인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타락한 기독교입니다. 애굽에서 믿는 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꺼집어 내어 광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2.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다.

1)광야

광야(에레모스)는 척박합니다. 그러나 광야는 진리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항상 광야에서 외칩니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합니다.

예수님도 한적한 곳(에레모스, 막1:35, 막6:35)에서 기도합니다. 이 한적한 곳이 원어로 광야입니다.

예수께서는 한적한 곳에 가서 쉬러 가십니다(막6:32). 그리고 광야(빈들)에서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그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현대에 있어 광야는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바쁘고 번잡한 도시에서 빠져나와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광야교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광야로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스스로 광야교회에 오셨습니까? 아니면 올 수밖에 없었습니까?

액크발로 당하신 것입니다. 광야교회에서 주님은 40일간 사탄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2)40일

40일은 모세의 40일 시내 산(출24:18: 신9:9), 엘리야의 사십 일 광야 여정(왕상19:8), 40년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시험을 더욱 확실히 떠오르게 하는 증거는 마태와 누가복음의 평행 단락에서 예수님은 시험을

이길 때 신명기 6장,8장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40일이라는 것은 ‘충분한 기간’을 뜻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충분히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3가지 시험의 단회적으로 간단히 표현했지만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40일동안

충분히 사탄에게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3)사탄

여기에서 사탄을 잠깐 집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만난 사탄을 2,000년 전의 사건으로만 치부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신앙의 교훈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만난 사탄이 바로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탄입니다.

흔히 사탄을 생각하기를 뿔달리고 망토 쓴 못된 타락한 천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항변하자,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도 사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영이 사탄입니다. 그런데 영은 어떻게 역사를 합니까?

사탄이 눈에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말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생각을 구성합니다. 그 생각을 틈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악한 영이라고 합니다. 이때 영은 프뉴마입니다.

프뉴마는 성령에게도 쓰이고, 귀신에게도 쓰이입니다. 성령은 프뉴마, 귀신은 프뉴마 아가달톤입니다.

수식어만 다릅니다. 원어로 보면 성령은 깨끗한 영을 뜻하고, 귀신은 더러운 영입니다.

그런데 영은 말씀이라고 요한복음 6장 63절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러운 말씀을 취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면 우리가 그 영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4)시험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은 다름이 아닌 말씀의 시험이었습니다. 말씀을 어떻게 취하느냐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흔히 시험은 세상에서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시험은 광야(교회)에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한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시험을 이기시고, 14절에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근본적인 시험은 교회에서 일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시험을 받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험을 받았던 장소가 광야이었습니다(신8:3).

 

성경에서 애굽은 세상을, 광야는 교회로 그립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름아닌 말씀으로 훈련(시험)되어지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이 훈련이 되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나와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내가 천국이 되어 다시 가나안이라는 세상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천국으로 표상하긴 하지만, 가나안은 여전히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진리가 되지 못하면 가나안에서 섞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섞여서 생긴 현상이 무엇입니까? 바로 최악의 암흑기인 사사기가 되는 것입니다.

 

(마 12:45, 개정)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 일곱 귀신은 다름 아닌 가나안의 7족속을 뜻하는 것입니다.

광야교회에서 진리로 바로 서지 못하고 세상에 들어가면 나중 형편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타락하면 심각해집니다. 세상의 조롱을 당합니다. 지금의 모습이 사사기 모습과 닮아 있지 않습니까?

 

결론:

이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신앙생활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를 광야로 몰아가십니다.

시험은 말씀의 시험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의 장소는 다름아닌 광야교회입니다.

광야교회에서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영(사탄)을 몰아내고 깨끗한 말씀(성령)으로

충만할 때 드디어 세상으로(14절이하) 나아가서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광야교회에서 듣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말씀을 위엣물로 받으면 성령이 충만할 것이요,

아랫물로 취하면 전보다 형편이 안좋은 7귀신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광야교회에서 진리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게 바르게 진리를 듣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