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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양식/강해설교

마가복음 강해 6 [1 장 15절 : 때가차매 하나님 나라가]

마가복음 강해 6 [1장 15절: 때가차매 하나님 나라가]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지난 시간에는 갈릴리에 대한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 갈릴리에서 먼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로마서의 전체 주제 단락이 롬1:17이라면, 마가복음의 전체 주제 단락은 아마도 막1:15이 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복음의 핵심 keyword가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keyword를 다 다루기에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라는 본문만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대한민국처럼 국가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닙니다.

흔히 생각하는 천당 혹은 천국 개념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통치, 혹은 다스림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의 나라(바실레이아)의 성격을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통치, 다스림하면 일반 국가의 왕을 생각합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다스림을 보여주십니다.

그에게 있어 통치는 오히려 “섬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개정)

 

어린 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왜 하나님 나라가 왜 어린 아이의 것입니까? 어린 아이는 부모를 의지합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섬김을 받고 자라갑니다.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섬김을 받을 줄 아는 자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잘 때 우리의 호흡을 지켜주십니다.

부모가 쌔근거리는 아기를 보며 느끼는 그 사랑... 부모의 섬김... 그 위대함! 그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입니다.

 

(막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 나라 원리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깁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배의 나라가 아니라 섬김의 나라임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자꾸 자신이 주님의 발을 씻겨 주겠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만이 섬길 수 있습니다.

아들이 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께는 섬기고, 이웃들에게는 섬김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웃이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섬길 수 없다.

젖먹이 아이가 부모를 섬긴다니 가당키나 한가? 하나님의 섬김을 받아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리 사랑입니다. 그렇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섬긴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치 못했습니다.

세상 그 어느 종교에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명적인 메시지 였습니다.

 

2. 때가차매

그래서 마가는 세례요한이 잡힌 후 복음을 전하셨고, 때가 찼다라는 표현을 굳이 한 것입니다.

잡힌 후에라고 번역된 ‘파라디도미’는 ‘감옥에 투옥되다’라는 뜻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다.

위임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

요한은 옛 언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장면입니다.

새 언약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 새로운 시대를 15절에는 ‘때가차매’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할 때 ‘때’는 카이로스입니다. 성경에서 시간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뜻한다면 카이로스는 ‘결정적인 순간이나 시점’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하는 이 순간이야 말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구약 성경의 예언에 대한 하나님의 성취입니다.

구약에서 그렇게 예언되어 왔던 바로 그 나라, 아 기다리고 고기다리던 그 메시아 시대가 드디어 가까이 왔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 나라가 왔다’라고 하지 않고 “가까이 왔다”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다가 왔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어의 뉘앙스는 “오고있다”라는 임박한 느낌을 줍니다.

메시아가 오셨다면 하나님 나라가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가까이 왔다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는 언제부터인가? 라는 질문을 갖게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는가? 메시아 나라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 크로노스가 카이로스가 됩니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후가 카이로스가 열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의 부활이전에는 제자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율법속에 담긴 진리를 가르쳤으나, 그들은 여전히 율법에 메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깨달은 것은 성령을 받은 이후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섬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배우면 나도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나의 자아를 죽일 때 비로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때 나의 크로노스는 죽고 카이로스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 카이로스의 삶을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삶을 살면 더 이상 크로노스의 시간은 없어집니다.

더 이상 과거를 믿지 않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에 불과합니다. 미래 또한 약속어음에 불과합니다.

카이로스를 사는 사람은 현재가 바로 그날입니다. 바로 지금 순간 순간이 영원인 것입니다.

영원은 과거나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원한 현재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방식입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시간에 얼마나 얽메여 삽니까?

지나간 것에 얼마나 후회하고 삽니까? 또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얼마나 두려워 합니까?

확실한 것도 아닌데 또 얼마나 허망한 꿈을 꿉니까?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개정)

 

요한복음에서는 그 카이로스를 ‘그 날’로 표현합니다. 진리가 되는 순간이 바로 ‘그날’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날에는 이렇게 우리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우리안에 있습니다.

천국이 실체가 되어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날에 누리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날을 누리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먼 훗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요14:20을 깨달은 바로

그날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개정)

 

그날이 되면 요16:23의 말씀처럼 드디어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섬김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 날이 되면 구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섬김입니다.

‘그 날’을 살고계십니까? ‘그 날’은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날’이 이루어지는 ‘오늘’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