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7 [1장 15절: 회개도 결국 하나님의 섬김]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회개하라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4장 17절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보다 더욱더 간단합니다. 헬라어에서 가장 앞에 나오는 단어를 강조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회개하라를 앞으로 당기면서 회개를 한층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반성, 뉘우침이 아니다. 회개하면 우선 눈물 콧물 흘리며 죄를 뉘우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살면서 내가 무엇인가 지은 죄에 대해서 울며 불며 고백했을 때 오는 그 시원한 감정을 회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회개>를 잘못알면 평생 잘못된 회개를 하게 됩니다. 잘못된 신앙관으로인해 일평생 죄의식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열심이 오히려 교회를 핍박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제대로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단어 하나를 알더라도 매우 신중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헬라어로는 metanoia는입니다. metanoia는 ‘다르게 생각하다’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입니다.
메타노이아의 기본 어근은 ginwvskw입니다. 기노스코는 ‘알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회개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bWv입니다. 이 슈브라는 단어를 파자하면, b는 성전, v은 해석하다라는 뜻입니다.
슈브는 ‘성전을 해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이 아래 것으로 주신 성전을 잘 해석하여 내가 가던 길이 잘못되었네 하고 깨닫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
슈브’입니다.
성전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모세시대에 성경이 있었습니까?
일반 백성들은 문자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게 펼쳐놓은 것이 ‘성막’이요 ‘성전’이었습니다.
보이는 성전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경이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성전을 통해서 그 성전 너머의 하나님을 깨달아 알면 ‘회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전대신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그 ‘성경’을 통하여 성경 너머의 ‘하나님’을 알면 그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이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모두 과녁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마르티아', 곧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태어나서 하나님과 등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습니까?
어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하나님의 섬김’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섬기시고, 항상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같은 원리로 회개 또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곳이 누가복음 15장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3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3가지 비유를 ‘단수’로 사용하여 마치 한 가지 비유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은 아들의 비유는 같은 내용을 말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00(양), 1/10(드라크마), 1/2(아들) 점점 강조하는 점층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100마리 양중 한 마리 양을 잃자 주인은 99마리를 두고 잃어버린 양 1마리를 찾으러 갑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양 1마리를 찾으러 가다가 99마리를 또 잃어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비유는 죄인과 세리를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들려주는 비유입니다.
당시에 죄인과 세리들과는 음식을 먹는 것은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잃어버린 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99마리 양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99마리의 양임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그 양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죄인과 세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은혜없이 도저히 방법이 없구나! 내가 길 잃은 자이구나! 내가 죄인이구나! 이러한 자들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길을 잃고 헤메는 자에게 주인이 먼저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찾아 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의 주도권이 전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한 일이라곤 길을 잃어버린 것 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린 비유입니다.
그 하나를 잃자 등불을 켜고 부지런히 찾아 드디어 찾아내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드라크마 10개로 목걸이를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를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잃어버린 동전을 찾아 완성의 목걸이에 끼어 넣어주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동전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10이라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율법’을 뜻합니다.
10계명을 우리의 힘으로 다 지켜내려고 하면 전체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꼭 하나는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10계명을 완성시켜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결국 예수께서 십계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이 회개라고 합니다. 역시 회개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이 이야기 다음에 잃어버린 아들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왜 아들이 집 나가는 것을 내버려두었을까요? 너무나 무기력한 아버지 아닙니까?
이 땅에 수많은 재난과 모순들을 볼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살아계실까?’를 묻곤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비유에 들어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는 앞에 두 비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유산을 미리 요구합니다. 유산은 아버지가 죽어야만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감히 자신의 몫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유산을 허락하십니다. 아들은 열심히 그 돈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이 ‘돼지 우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른 돼지와 싸워서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결국 ‘쥐엄열매’이구나를 깨닫습니다.
세상에는 먹을 것이 없구나! 세상에는 진리가 없구나! 그렇다면 진짜 내 양식은 우리 아버지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얼핏보면 아들이 회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버지께서 그렇게 허용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부조리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를 찾는 자들이 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부조리를 허락하신 것은 그것을 통해서 진리를 갈구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다 했습니다.
금식도 헌금도, 술도 끊고, 예배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대합니까?
자신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이 맡아들이 바로 이 비유를 듣고 있는 바리새인이요, 서기관입니다.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99마리 양이요, 9개의 동전이요, 맡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죽었다가 살아난 자이다. 그러나 너는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구나! 너는 아직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구나~.
너는 아직 네가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더 낫지 못하면’이라고 번역된 ‘페리슈오’ 는 차원이 다른 의를 말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차원이 다른 것으로의 방향 전환,
그것이 회개입니다.
보통 회개를 180도 방향전환이라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180도 방향을 전환한다고 해도 땅에서 땅으로 전환한다면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차원이 다른 회개는 땅에서 하늘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땅의 관점에서 하늘의 관점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차원이 다른 회개가 이루어질 때 하늘들의 섬김(하나님 나라)이 시작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안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안식으로 주님은 초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의 섬김으로 이러한 안식의 삶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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